Date. 2007-01-14 00:14:02.0 Hit. 14859
[부부] 배우자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당신은 나의 것?” | 관리자
배우자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당신은 나의 것?”


“남편은 내가 대화하자고 하면 ‘어 말해…’라며 계속 티비를 보지요. 어떨 때는 ‘나중에..’라며 신경질을 팍 내면서 벌떡 일어나 컴퓨터방에 가서 게임을 하지요. 도저히 대화를 할 수가 없어요”
“아내는 제가 10번 잘해도 1번 잘못하면 그걸 가지고 바로 저에게 비난을 합니다. 그러면 저는 너무나 기가 차서 말문을 닫죠. 아내에게 굳이 노력하며 잘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남편은 다른 사람에게는 너무나 좋은 사람이에요. 친절하고 자상하고..시어른께도 너무나 잘하지요. 하지만 저에게만 짜증스러운 말투와 신경질이죠. 저만 무시하는 거지요, 제가 우습게 보이나봐요”
"아내는 잘 울어요.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울기 시작하지요. 저는 아내의 우는 모습에 짜증이 나는게 사실이에요. 이러저러하다 말을 하면 아내는 그 말을 듣는게 아니라 자기에게 화를 낸다며 무섭다고 하면서 웁니다. 아내와 아예 말을 시작하지 않는게 좋은 것 같아요""
“남편은 퇴근하여 집에 오면 늘 찡그린 얼굴로 앉아있어요. 저는 또 저 사람이 왜저러나..눈치를 보게 되지요. 그러다가 남편에게 다가가 ‘표정이 왜 그래, 기분 나쁜 일 있어?’라고 물으면 남편은 신경질을 팍 내며 ‘기분 안나빠…’라고 소리를 지르지요, 저는 그러면 눈물이 울컥 나와요…”

이 대화장면들은 우리 주변에서 종종 일어나는 장면이다. 아니, 자주 반복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부부에게는 이 장면 자체가 바로 ‘생활’일 수도 있다. 이런 장면이 자주 연출되고 있다면 그 부부는 이미 갈등의 골이 패인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서로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애써 이해하고 참아왔는데, 어떤 이유로 무엇이 잘못되어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일까?


대개 부부싸움으로 번지는 대화상황을 보면 대화시작 이전에 마음 안에서 배우자에 대한 ‘평가’가 이미 이루어져 있는 예가 허다하다. 내 잣대로 배우자를 ‘평가’하고 잘잘못, 감점사항을 빼곡히 기억하며 거기에 더하여 혼도 좀 내고 싶고 앞으로 이러저러하게 해달라는 요구에 이르기까지 ‘나만의 시나리오’가 작성된다. 즉 ‘준비’를 하는 것이다. 준비하면서 스스로 무장하게 된다. 무장한 채 배우자를 기다리고 맞이하며 쳐다보고 말을 건넨다. 이 때 내 마음 안에는 이미 ‘상한 감정’이 그득하게 된다. 실망, 화, 짜증, 초라함, 억울함…..터질 듯 터질 듯 간당간당하게 마음의 수문을 잠그고 숨을 내쉰다. 그러나 눈빛에서 무엇인가가 새어나올 수 밖에 없다. 표정과 자세도 긴장되고 굳어있다. 이런 상황일진대 첫 말 한마디가 곱게 나올리 만무하다. ‘배우자에 대한 평가’와 ‘대화전 사전 준비’의 과정은 내 내면에 어떤 ‘기대’가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배우자가 그에 전적으로 부응해주길 바라는 유아기적인 마음 또한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마음은 ‘나의 평가’와 ‘나의 준비’이므로 현실로 드러났을 때 대부분 ‘좌절’된다. 위의 대화장면들처럼 말이다. 배우자에게 평가에 근거한 비난을 하게 되고 질타를 하게 된다. 나의 ‘준비’대로 요구하게 된다. 배우자가 나에게 ‘잘못’한 것이므로 일단 짜증이 나며 배우자를 확 혼내고 싶은 충동이 용솟음친다. 그러다가 일순간 만족스럽지 못한 결혼에 대한 당황스러움과 거칠어진 나의 모습, 사랑받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연민과 억울함마저 넘쳐흐르게 된다.

배우자를 평가하고 배우자에 대해 준비자세를 갖춘다는 것은 배우자를 나의 ‘소유물’로 여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배우자를 내 것이라고 여기고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이다. 배우자가 나를 충족시켜주고 기쁘게 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문제는 꼬이는 것이다. ‘소유’의 개념을 지닌 채 대화를 하게 되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질타, 분노가 연이어질 수밖에 없다. 자녀를 독립적인 개체가 아닌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는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연애관계의 초반이나 결혼을 목표로 달려갈 때에는 “기꺼이” 서로가 서로의 ‘소유’가 되어준다. 파트너의 뜻에 맞추어주고 파트너의 마음에 들기 위해 갖은 애를 쓰게 된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종속되는 것 자체가 ‘기쁨’을 준다. 그러나 결혼생활이 길어지고 파트너와 익숙해지고 ‘미운 정, 고운 정’이 한껏 들게 되면 우리 모두는 달라져야 한다. 아니,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연애시절과는 달리, 나의 젊디 젊은 청춘시절과는 달리, 늙어가는 나 자신을 받아들여야 하며 생활의 스트레스, 좌절되는 꿈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자녀들도 그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혹은 계속되는 직업적 성공, 자녀들의 승승장구에도 불구하고 결국 절대고독 앞에 서게 되고 공허할 수 밖에 없는 게 삶 아닌가. 변할 것 같지 않았던 모든 것들이 ‘변화’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 배우자의 변화는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신뢰와 믿음마저 흔들리는 듯 하다. 아니, 흔들린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제 때가 되었다. 소유의 개념도 변화하여야만 한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결국은 떠나보내는 마음가짐을 다지라고 삶은 아프게 우리 모두에게 다가온다. 그 메시지가 배우자를 통해 다가올 때 우리는 깊이 아프다.

클리닉에 내담하여 불만족스러운 부부관계에 대해 토로하는 부부들을 보면 ‘변화’에 저항적인 부부들이 드물지 않다. 이 모습은 ‘대화’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과거의 일을 들추어서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당신 또 그럴거지, 그럴 줄 알았어…’라는 언급을 하는 것 등이 바로 변화를 거부하고 과거의 습관을 반복하는 대표적인 대화습관이다. 연애시절 보여주었던 배우자의 다정다감했던 모습과 약속들, 수많은 다짐들을 지금의 결혼생활 속에서도 여전히 기대한다. 그러나 달라져버린 배우자에게 '속았다'는 분노를 느끼고 만다. 이러한 습관과 마음의 느낌들은 과거에 내가 알고 있는 배우자의 모습을 토대로 배우자를 내 곁에 끌어앉히려는 무의식적 시도이자 불안일 뿐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그 시도가 현실로 드러나자마자 이렇게 좌절되다니, 속상하기 그지없다. 새롭게 변화하는 현재의 어떤 한 존재로서 배우자를 관찰하는 마음의 여유는 커녕 내가 꿈꾸었던 장미빛 인생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마음을 회색빛으로 물들인다. 이 때 내 마음의 문도 서서히 닫혀진다. 자세히 보면, 그 안에는 달라져가는 내 자신, 내 모습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몸부림도 문득 섞여 있다. 점점 빛이 바라고 있는 ‘내 사랑’에 대한 슬픔이기도 하다. 현실과 부부관계는 그렇게 실망스럽고 무덤덤하며 아무런 대답이 없다. 사랑 또한 식은 듯하며, 젊은 날의 꿈은 스러져가고 있다. 그럴 때 우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의 기대를 한방에 충족시켜줄 듯 나에게 사랑을 주었던, 미래를 약속했던 배우자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리기 시작한다. ‘너 때문이야’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며 배우자의 흠을 하나하나 짚어내며 내가 느끼는 불행감의 범인체포에 나서는 것이다. 이 때 나오는 대화는 ‘비난, 공격, 비판, 요구, 지시’의 성격을 띠게 된다. 상대방을 ‘갱생’시키고 싶다는 소망을 말하는 부부도 있다. 이런 눈으로 배우자에게 다가가면 백발백중 상대 배우자는 꽁무니를 빼고 그 상황에서 도망가려 한다. 안그래도 삶이 힘들어 죽겠는데, 배우자가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니 입과 귀를 닫아버리는게 상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티비시청을 하거나 베란다에 나가 담배를 태우거나 배우자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게 된다. 아이들에게 분풀이를 한다. 이 때 배우자의 마음의 문마저 덜컥 닫혀진다.

이제 우리 부부들은 달려져야 한다. 소모적인 부부싸움이 아닌 치열한 대화를, 배우자에 대한 요구와 비난보다는 공감어린 눈빛을, 간섭보다는 관찰을, 과거보다는 현재를, 소유보다는 존재를 즐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내가 먼저’ 좋은 배우자가 되겠다는 자발적 다짐과 자세가 관건이다. 부부관계를 물 흐르는 가운데 발을 담그고 있는 풍경이라 여겨보자. 배우자와 내가 함께 앉아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며 그렇게 서로 옆에 있지만 나름대로 각자의 눈으로 풍경을 즐기고 있는 장면.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함께, 같은 온도의 물에 발을 담근 채 “일정 부분”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느슨한 결합, 적정한 거리감을 유지한 채 배우자의 존재 자체를 느끼는 것, 그러면서 열린 대화를 시도해 보면 어떨까? 준비하지 말고, 무장하지 말고.

김선희/김선희부부클리닉 원장, 임상심리학자

* 알리안츠생명 사외보(계간지 2007년 '봄'호)에 게재된 필자의 글 일부를 인용하여 올립니다. *